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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 마케팅에 호소한 광고로 대대적 홍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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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 마케팅에 호소한 광고로 대대적 홍보

러시아 정벌의 야욕을 담은 ‘정로환’


몸이 아프면 바로 사용할 수 있도록 집에 한두가지 약은 구비하고 있다. 오래 전부터 사용해 온 가정상비약 가운데 가슴이 두근거리거나 답답할 때 찾는 우황청심환이나 배탈, 설사에 찾는 정로환은 친근한 이름이다. 일본에서 처음 개발된 정로환은 설사를 멎게 하는 황련, 진통효과가 있는 감초, 진정 효과가 있는 향부자, 장내 가스를 제거해 주는 진피 등이 더해진 생약이다. 정로환의 주성분인 목제 크레오소트(wood creosotes)는 너도밤나무 등에서 얻은 목타르를 증류한 뒤 물보다 무거운 유분을 정제한 것으로서 살균 효과가 있다.



일본 제국주의의 애국심에 호소한 정로환의 신문 광고.



러일전쟁 한창일 때 설사병이 전쟁보다 가혹

국내에서 정로환이 생산되기까지 2008년 세상을 떠난 동성제약 창업주 고(故) 이선규 회장의 노력이 있었다. 그는 직접 일본으로 건너가 삼고초려 끝에 전직 다이코약품 공장장에게서 정로환의 제조기법을 알아낸다.1972년 봄 국내 최초로 정로환을 생산, 출시하는데 첫 해에만 50억원 매출을 기록한다. 한 때 정로환을 식초에 녹여 무좀약으로까지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을 만큼 만병통치약으로 인식되기도 했다.

그런데, 정로환은 일본의 전범자를 기리는 야스쿠니 신사에 진열되어 있다. 도대체 어찌된 일일까.제2차 세계대전 종전 60주년을 맞이한 2005년, 일본은 반성은커녕 엉뚱하게도 러일전쟁(1904∼1905년)의 승리를 기념한다며 ‘일본해 해전 100주년 기념식’을 개최한다.이 자리에서 나카소네 전 일본 수상은 “일본이 러일전쟁에서 승리함으로써 아시아인도 백인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었다”며 축사하였다.

러일전쟁이 한창일 무렵 중국을 완전히 지배하기 원했던 일제는 러시아 정벌을 위해 만주로 군대를 보낸다. 하지만 전쟁보다 가혹한 것은 설사병이었다.

일본 본토에서 건강한 장정들을 선발해 보냈지만 며칠도 되지 않아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왔다. 위생시설이 좋지 않은 만주에서 마신 식수가 문제였다. 일본 군부는 과거의 악몽을 떠올렸다. 1872년 일본 국민 모두가 병역의무를 지는 국민모병제를 도입한 이래 일본군은 이질, 장티푸스열, 각기병 등에 시달렸다. 청일전쟁(1894~1895년)을 치르는 동안 일본 육군 가운데 총 1만 3488명이 사망했는데 전투로 사망한 인원은 1594명이고 나머지 88%에 해당하는 1만 1894명은 질병으로 목숨을 잃었다.

이들 대부분이 이질로 인한 설사 때문이었다. 1900년 의화단 사건에서도 사망자 1306명 가운데 72%에 달하는 949명이 질병으로 목숨을 잃었다.



맥아더 장군과 나란히 선 히로히토. 맥아더는 천황제를 폐지했지만 오늘날 일본을 보면 사실상 천황제가 부활한 것으로 보인다.



처음 약 이름에 러시아를 정벌하자는 뜻 담겨

러일전쟁 상황을 전해들은 일본의 메이지 일왕(1852~1912년)도 10년 전 청일전쟁의 상처를 되풀이할 수 없었다. “하루 빨리 배탈, 설사를 멈추게 하는 특효약을 만드는 것이 보국의 길이자 나를 기쁘게 하는 일”이라며 전국에 칙령을 내린다. 이렇게 해서 개발된 약에 붙여진 이름이 바로 정로환(征露丸)이다. 러시아(露, 러시아의 한자식 표기가 露西亞)를 정벌(征)하자는 의미를 담은 둥근 약(丸)인 것이다.

그런데, 실제 이 약을 최초로 개발한 사람이 누구인지는 확실치 않다. 일본 열도의 수많은 의사, 약사, 제약회사가 뛰어들어 자신만의 비방을 보내왔는데 이 가운데 설사에 효험이 입증된 약에 결국 정로환이라는 이름을 붙였다는 설이 있다.

다이코약품은 1902년 오사카에서 약을 팔던 나카지마 사이치가 처음 이 약을 개발해 판매하기 시작했다고 주장한다. 또 다른 설로 1903년 육군의무학교 강사였던 군의관 미치토모 토츠카가 정로환을 개발했다는 얘기가 있다. 토츠카가 장티푸스균과 대장균을 배양하다 우연히 크레오소트의 살균 효과를 발견하게 되었고 세균학을 공부하던 시라이와 로쿠로와 협력해 약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여기에 또 한 명의 인물로 카사이 켄지(또는 카와니시 켄지)가 등장한다. 그는 도쿄제국대학 의학부를 졸업 후 청일전쟁에 군의관으로 참전한 이력이 있다. 그런 그가 토츠카가 약을 만드는데 일조했다는 것이다.켄지는 도쿄가 아닌 교토제국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는 일본 제국주의의 애국심에 호소한 정로환의 신문 광고. 데 이때 제출한 6편의 독일어 논문 가운데 2편이 각각 ‘위장관에서 크레오소트의 사용’과 ‘크레오소트의 치료적 적용’에 관한 것이었다. 이 연구 덕분에 러일전쟁에서 명성이 알려졌고 방위성의 지원 하에 1906년 독일 유학길에 오르게 된다. 그는 독일에서 내과를 공부하고 뮌헨에서 2년간 연구 생활을 한다. 그리고 1908년 기생충질환인 주혈흡충증(schistosomiasis) 분야에서 전문가의 반열에 오른 후 만주에서 악명을 떨친 일제의 남만주철도주식회사에서 최고위생장교로 근무하다 남만주의과대학의 초대학장이 되었다.

군인들 정로환 먹자않자 일왕의 명령 하달도 러일전쟁 당시 일본군의 의료 수준은 최고였다. 이 기간 중 미국 육군의 무관 자격으로 몽골지역에 있었던 군의관 루이스 시먼(Louis Livingstone Seaman, 1851~1932)이 1906년 펴낸 회고록에 따르면 일본 육군은 수질시험장비, 현미경, 이동식 X선 등의 의료장비를 갖추고 있었다. 시먼은 그들이 현미경 등을 통해 질병을 감별해내기 때문에 일본 육군에서 말라리아면 말라리아고, 장티푸스면 장티푸스지 그냥 열이 나는 병이란 없다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런 일본 육군도 깊은 고민거리가 있었다. 군인들이 일본으로부터 공수된 정로환을 먹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약이 생긴 모양도 염소똥 같지만 냄새가 고약해 가까이 하기도 싫어했다. 먹는 척 하면서 구덩이에 파묻거나 수풀로 던져버리기까지 했다.

지휘관들은 어떻게 하면 정로환을 먹게 할 수 있을까 대책회의를 한 끝에 약을 먹으라는 일왕의 명령이 하달되었다고 전하기로 했다. 이 얘기를 듣자 군인들은 정로환을 먹기 시작했고 많이 나갈 때는 하루에 200만 정씩 약이 나갔다.약을 하루 3번까지 먹는다고 치면 70만 명이 넘는 일본군이 정로환을 복용한 셈이다.

이후 일본 본토는 물론이고 일본의 손아귀에 들어간 한국에서도 대대적으로 정로환이 홍보되었다. 러일전쟁을 거쳐 제2차 세계대전에 이르기까지 정로환 광고에 욱일기를 든 군인의 모습에 자극적인 문구들이 넘쳐났다. 대동아제국 건설을 꿈꾸는 일본인들에게 애국 마케팅에호소하였다.

“이 약의 효능이 궁금하면 1백만 예비군에게 물어봐라.”, “이 약을 아직도 모른다면 일본인이 아니다.”, “이 약은 영리목적이 아니라 영예로운 승리를 축하하고 기념하기 위해서 나왔다.”라며 열을 올렸다. 서양에서 아스피린이 친숙한 약인 것처럼 이렇게 정로환은 일본인에게 대중적인 약으로 급성장한다.

1951년 4월 맥아더 장군이 연합군 총사령관에서 물러난 직후 국제뉴스서비스(International News Service)의 극동 책임자이자 유명한 종군기자인 하워드 핸들맨(Howard M. Handleman, 1913~1994)은 대일본웅변회강담사라는 일본출판사에 10쪽 분량의 원고를 보낸다. 이 원고는 일본어로 번역되어 킨구(キング, 영어로 king)라는 잡지에 실린다. 칼럼 제목은 ‘맥아더 장군과 정로환’이었는데 맥아더 장군이 종전 후 일본에 남긴 유산에 관해 다루었다.

맥아더는 일왕(일본에서는 天皇이라고 표기)의 한 마디에 일사분란하게 움직인 정로환에 얽힌 일화를 듣고 생각에 잠 겼다. 그들만의 ‘천황제’에 빠져 마치 종교 집단처럼 요동치는 일본인의 습성을 절감한 것이다. 그래서인지 맥아더는 천황제를 폐지하면서도 인간의 신분으로 떨어진 히로히토의 신변은 보호하면서 일본인 길들이기를 시도했는지도 모른다.



원조 마케팅에 심취해 버젓이 ‘征露丸’으로 표기한 제품도 있다.



1949년 일본 후생성은 국제 신의상 정벌의 뜻을 담은 제품명을 쓰는 것이 적절하지 않고 당시 소련과 외교적 마찰을 우려해 정로환이라는 발음은 유지하되 정벌을 뜻하는 한자인 ‘征’ 대신에 ‘正’으로 바꾸어 ‘正露丸’으로 표기하도록 제약회사에 지침을 전달한다. 한자어 ‘露’도 러시아 대신 이슬을 뜻한다고 나름 의미를 부여한다.

1998~2000년 정로환이 간암을 일으킬 수 있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한때 일본이 떠들썩했지만 1995~2004년 일본에서만 정로환이 4100만 병 팔렸고 우리나라 돈으로 수백억 원에 달한다. 현재 일본에서만 30개 이상의 제약회사에서 생산해 한국, 대만, 중국, 미국, 캐나다에 수출하고 있다.제약회사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이른바 원조 마케팅까지 등장하였다. 아예 브랜드 이름부터 ‘원조 정로환’을 내세운 한 회사는 처음 붙여진 이름인 ‘征露丸’으로 표기하고 있다. 표지 모델로는 메이지 일왕 시대 일본 최초의 의무감을 지낸 마츠모토 준을 내세웠다. 그는 나가사키에서 일본 최초로 서양의학을 공부한 의사 1세대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일본군 제복에 긴 수염을 하고 있어 정로환의 권위를 살려주는 느낌이다. 마치 원조 보쌈집 앞에 할머니 사진을 붙여놓은 것 같지만 엉뚱하게도 그가 군에서 활동한 1870년대는 약이 개발되기 한참 전이어서 정로환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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