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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년간 환자 곁을 지켜온 청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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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년간 환자 곁을 지켜온 청진기





아이가 태어나 축복 속에서 1년을 맞이하는 돌잔치의 백미는 돌잡이 시간이다.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실, 부자가 되라는 의미의 쌀과 돈, 공부를 잘 하라는 붓이나 연필, 그리고 무인(武人)이 되라는 뜻의 활 대신 요즘에는 스포츠 스타가 되라며 골프공이 상 위에 오르기도 한다. 여전히 빠지지 않는 것 가운데 하나가 청진기 장난감이다.


[사진 1] 200년 전 청진기를 발명한 라에넥


청진기는 정확히 200년 전에 탄생했다. 검색 엔진 구글(google.com)은 청진기를 발명한 르네 라에넥(René Théophile Hyacinthe Laënnec, 1781~1826년)의 235번째 생일을 맞이해 지난 2월 17일 구글 홈페이지 초기 화면을 청진기 그림으로 장식했다[사진 1].



라에넥은 1781년 프랑스 브르타뉴 주의 캥페르(Quimper)에서 태어났다. 그가 5세 되던 해 모친이 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는데 변호사인 부친은 흥청망청 지내며 자식을 돌보지 않아 할아버지 형제인 아베 라에넥(Abbé Laënnec) 밑에서 자란다. 프랑스 혁명이 한창인 12세 때 의사이자 낭트대학교 의과대학 학장인 삼촌 기욤 라에넥(Guillaume François Laënnec, 1748~1822년)에게 맡겨졌고, 삼촌의 권유로 의학에 입문하게 된다. 라에넥은 14세 때부터 낭트 혁명군대의 의료 조수로 활동을 시작해 군대와 군병원에서 해부학과 외과수술의 경험과 지식을 쌓게 된다. 1795년 낭트 시립병원에서 환자 간병을 도왔고 18세인 1799년 6월 그 병원에서 의사가 된다. 이후 파리로 올라와 당대 최고의 의사로 꼽히는 뒤피트랑(Guillaume Dupuytren, 1777~1835년), 코르비자르(Jean-Nicolas Corvisart, 1755~1821년) 등으로부터 더 심도있게 의학을 배우기 시작해 공부 첫 해 의학과 외과학에서 수석을 차지한다. 스승인 뒤피트랑은 여러 질환에 자신의 이름을 남긴 해부병리학의 대가였기에 라에넥은 환자의 진찰 소견과 시신의 부검 소견을 접목해 배울 수 있었다. 코르비자르는 나폴레옹(Napoléon Bonaparte, 1769~1821년)의 주치의로 아우엔브루거(Joseph Leopold Auenbrugger, 1722~1809년)의 타진법(打診法)을 프랑스어로 번역해 소개한 의사였다.

아우엔브루거는 오스트리아에서 여관집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7세 때부터 부친이 손가락으로 술통 옆면을 두드려 나는 소리를 듣고 포도주가 얼마나 남아있는지 짐작하는 것을 보며 배웠다. 그는 비엔나에서 의대를 졸업한 뒤 비엔나의 스페인 군병원에서 10년간 의사 생활을 한다. 이때 사람의 몸도 술통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해 가슴 여러 곳을 두드려 나는 소리를 연구한다. 정상적으로 공기가 가득한 폐와 달리 가래와 고름이 찬 폐는 두드리면 둔탁한 소리가 났다. 1761년 그는 라틴어로 사람의 가슴을 두드려 가슴 속 숨은 병을 발견하는 타진법을 소개하는 소책자(Inventum Novum)를 펴냈지만 주목을 받지 못한다[사진 2].



[사진 2] 오스트리아 의사 아우엔브루거(좌)와 그가 타진법을 소개한 책(우).


반세기가 흘러 1808년 라에넥의 스승 코르비자르가 이 책을 프랑스어로 번역해 소개하면서 세상에 널리 알려졌고 이듬해 아우엔브루거는 세상을 떠난다. 라에넥도 이 번역서를 통해 타진법을 익히게 된다. 지금도 의사가 간경화 환자에서 복수가 얼마나 되는지 진찰하면서 손가락으로 배를 두드리는데 바로 이 방법이 타진법이다. 라에넥은 1804년까지 복막염, 무월경, 간질환에 관한 훌륭한 논문을 발표하지만 실망스럽게도 졸업 후 대학에 남지 못한다. 대신 개인의원을 열고 환자를 진료하면서 틈틈이 해부학 과외도 하고 해부병리학 논문도 발표한다. 그는 경제적으로 어려워졌고 어린 시절부터 괴롭혀온 폐병이 말썽을 일으켜 기운이 없고 수시로 열이 났다. 결국 파리를 떠나 고향 브르타뉴로 내려가 요양하며 시를 쓰고 플롯을 연주하면서 마음을 달랜다. 라에넥은 몸을 추스린 뒤 다시 파리로 돌아와 학술지 Journal de Médecine의 편집장이 되고, 나폴레옹의 삼촌인 페슈(Joseph Fesch, 1763~1839년) 추기경의 주치의가 되었다. 1812년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으로 어수선해지자 살페트리에르(Salpêtriére)병원에서 부상 군인을 돌보았고, 이후 파리 네케르(Necker)병원으로 스카우트된다.



[사진 3] 청진기 발명 전까지 환자 몸에 귀를 대고 시행한 청진법(좌)과 청진기를 이용한 청진법(우).


이때까지만 해도 의사들은 히포크라테스 때부터 내려져 오던 대로 진찰 시 환자의 가슴에 직접 귀를 대고 숨소리와 심장소리를 들었다[사진 3]. 하지만 이 방법으로는 소리가 잘 들리지 않을뿐더러 위생 상태가 나쁜 환자로부터 감염이 되기 십상이었다. 1816년 가을 라에넥은 심장이 안 좋은 여성을 진료해야 했다. 숫기가 없는 라에넥은 그녀의 몸에 귀를 대고 진찰하는 것을 망설였다. 더구나 그녀는 뚱뚱한 편이어서 소리가 잘 들릴 것 같지 않았다. 9월 어느 날 아침 파리 루브르 궁전 뜰을 지나다 통나무를 두드리며 노는 아이들을 보았다. 한 아이가 통나무 끝에서 핀으로 긁으면 반대쪽 아이는 종이를 말아서 소리를 듣고 있었다. 바로 이거구나. 다음 날 라에넥은 판지를 둘둘 말아 그녀의 가슴에 대고 들어보았다. 역시나 심장소리가 더 선명하고 크게 들렸다.



[사진 4] 라에넥이 개발한 3단 분리형 청진기(좌, 중)와 그가 청진법을 기록한 연구(우).

라에넥은 3년간 연구 끝에 길이 25~30 cm, 직경 2.5~3.5 cm인 속이 빈 나무 원통을 완성한다. 3단 분리가 가능한 이 물건에 그리스어로 가슴을 뜻하는 ‘stethos’와 검사한다는 뜻의 ‘skopein’를 합쳐 ‘stethoscope’, 즉 청진기라는 이름을 붙인다[사진 4]. 어렸을 때부터 고전에 심취해 라틴어와 고대 그리스어를 익혔던 것을 활용한 것이다.

처음에 그는 심장음을 들으려 했으나 숨소리 때문에 방해가 되자 호흡음 연구로 전환하였다. 1819년 8월 자신이 제작한 청진기를 이용해 환자에게서 폐음과 심음을 들은 소견과 부검 결과를 접목해서 쓴 두 권의 책(De L’auscultation Médiate)을 출간하였는데 13프랑에 3,500부나 팔려나갔다. 이 책에서 청진기를 통해 폐렴, 기관지확장증, 늑막염, 폐기종, 기흉 등 각종 폐질환에서 들리는 소리를 구분하는 방법을 설명하였다. 유럽 전역으로부터 청진법을 배우려는 의사들이 쇄도했고, 프랑스는 물론 여러 나라를 누비며 강연을 한다. 1822년 그는 프랑스대학교 교수가 되고, 1823년 1월 파리의 샤리테(Charité)병원 교수와 프랑스 의학한림원의 정회원이 된다.

1824년 8월에는 프랑스 정부로부터 슈발리에(Chevalier) 기사 훈장을 받는다. 같은 해에 남편과 사별한 아르구(Jacqueline Guichard Argou)와 결혼한다. 하지만, 행복도 잠시. 그의 건강은 갈수록 나빠져 기침과 가래, 열이 있었고 체중은 자꾸 줄어만 갔다. 조카인 메리덱(Mériadec Laënnec)이 청진기로 그의 거친 숨소리를 들었을 때 이미 폐병은 심한 상태였다. 라에넥은 다시 브르타뉴로 요양을 떠났고 1826년 8월 13일 45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한다. 그의 모친, 형제, 삼촌이 그랬듯 그를 앗아간 것은 결핵이었다. 그는 세상을 떠나며 논문, 여러 상, 시계와 반지, 그리고 인류 최초의 청진기 등을 모두 조카 메리덱에게 유산으로 남긴다. 2년이라는 짧지만 행복했던 결혼 생활동안 아내가 유산해 아이가 없었기에 조카를 누구보다 아꼈다. 그가 세상을 떠난 후 청진기가 개량되면서 지금은 양쪽 귀로 듣는 청진기가 보편화되었다. 청진기보다 더 정확하면서도 휴대가 가능한 초음파의 등장으로 청진기의 효용성이 도전을 받고 있지만 여전히 환자 진료에 빼놓을 수 없는 필수품이다.

2014년 프랑스 파리 소방대, 육군병원 군의학교, 페르시(Percy) 군병원 등에서는 항공으로 환자를 후송할 때 소음으로 인한 청진의 어려움을 분석한 연구를 항공의학저널(Air Medical Journal)에 발표하였다. 연구팀은 의료용 팔콘(Falcon) 50 제트기에서 일반 청진기와 비교해 주위 소음을 제거하고 청진음을 증폭시킨 전자 청진기로 각각 심장음과 폐음을 들었을 때 어느 것이 더 나은지 분석하였다. 하나도 들리지 않을 때를 0점, 완벽하게 잘 들릴 때를 10점으로 하여 평가한 결과 일반 청진기는 심장음이 평균 4.53점, 폐음이 3.1점인 반면에 전자 청진기에서는 심음이 7.18점, 폐음이 5.10점으로 더 잘 들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최근에는 스마트폰 앱을 활용한 청진기도 등장해 앞으로 펼쳐질 청진기의 200년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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